학생 삼청교육대 설립 목적과 징집 대상 청소년 징집 수료증 전두환 제4공화국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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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목적과 징집 대상

삼청교육대 설립하고 운용한 목적

사회에 존재하는 범죄자 및 인간 말종 등을 교화시켜 국내 치안을 개선하며 북한을 멸망시키는 것에 중점.

삼청교육대 징집 대상

  • 현행범, 재범 우려자
  •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 조폭, 깡패, 건달.
  • 개전의 정이 없는 자
  • 주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자
  • 도둑, 강도
  • 반정부, 무정부주의자, 불온선동자.
  • 사회풍토 문란 및 사회질서 저해사범
  • 전두환 비방자 또는 허위사실 유포자, 5.18 유언비어 유포자 등.
  • 윤락가 여성, 포주, 여인숙 주인 등과 같은 매춘업자, 계주 등.

물론 실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위의 징집 대상 외에도 더 있었다.

국방부의 자료 중 하나인 계엄사에 따르면,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대학졸업자가 1.6%인 반면 초등학교 졸업자는 48.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차례 이상의 전과가 있는 사람은 8.2%인데 반해, 초범은 22.3%이며 전과가 없는 사람도 35.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 선동 및 도망치는 자, 반항자는 사살한다.

2. 수련생은 교육대 요원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3. 음주 및 흡연은 금한다.

4. 신문, 잡지 구독 및 라디오, 티브이 시청을 금한다.

5. 허가되지 않은 면회, 외출이나 외인(외부인) 접촉을 금한다.

6. 동료간의 장난행위 및 시비, 기간 장병에 대한 반항자는 엄단한다.

7. 집단 행위를 금한다.

당시 삼청교육대 생활수칙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자!

알맞게 먹고 헛되게 버리지 말자!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

시키면 시키는대로 한다!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는다!

주면 주는대로 먹는다!

당시 모 삼청교육 실시 부대의 식사구호

대한민국 제4공화국 말기인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까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 위원장이었던 전두환이 삼청계획 5호에 따라 만든 반인륜적 불법 기구로 줄여서 삼청대라고도 부른다.

치안 보호라는 명분으로 설립된 삼청교육대는 범죄자 외에도 무고한 시민까지 수용하여 불법적인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법적 근거가 없고 위헌적인 초법적 징벌기구로, 수감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치범수용소로 여겨지고 있다.

삼청교육대 설립의 근거법령이었던 1980년 계엄포고 제13호가 2018년 12월 28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위헌임이 확인되면서 법적으로 무효이자 헌법과 법치주의를 유린시킨 국가폭력으로 최종평가되었다. 예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년 1월 27일 47회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란 이름의 방송은 삼청교육대의 실상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육군 군부대에서만 실시했으며 수용자들은 고문에 가까운 육체훈련은 물론 진압봉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군용차에 묶여 끌려가는 반인륜적인 가혹행위를 당했다.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병대, 대한민국 공군 등의 다른 군은 동참하지 않았다.

43년만에 드러난 '학생 삼청교육대'

"맞고 또 맞았다"

"머리를 밀어 분간이 쉽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다 중·고등학생이었지."

61세 김모 씨에게 43년 전 학생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그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 삼청교육 대상자로 신고당해 피신하다 경찰에 붙잡혔고 약 한 달간 유치장에 구금됐다.

이후 버스에 실려 강원도 화천 오음리의 제11공수여단 62연대 산하 유격훈련장에 입소했다. 학생 대상 삼청교육 훈련장이었다.

열여덟 살 때였다고 한다.

김씨는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버스 안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창밖을 보지 말고 고개를 숙이라고 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버스에 함께 탄 이들도 하나같이 앳된 얼굴의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최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확인한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 학생 600여명 가운데 한 명이다.

학생 삼청교육은 고(故) 전두환 씨의 계엄사령부 계획에 따라 1980년 9월20일∼10월18일까지 제11공수여단에서 자행됐다.

수료증을 들고 있는 김씨

교육은 구타부터 시작됐다.

"훈련장에 도착해 군복으로 갈아입은 순간부터 총을 찬 군인들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어. 눈 감고 귀 막고 그렇게 매질을 당했다니까. 연병장으로 가는 계단을 기어서 내려가라고 시키고는 느리다고 또 때렸지."

군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 마구 구타했다고 한다. 기합 소리가 안 맞는다고, 혹은 목소리가 작다고 때리기도 했다.

하루는 중대장의 군홧발에 차이고 또 차여 연병장 끝에서 끝까지 100m 거리를 뒷걸음친 적도 있었다.

김씨는 "살면서 그렇게 맞은 적이 없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악몽"이라며 여전히 생생한 기억에 괴로워했다.

그 중대장은 퇴소 후 한동안 잊고 있던 삼청교육대의 고통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씨는 "퇴소하고 20년이 지나 우연히 그 중대장을 만났는데 단번에 알아봤다"며 "트라우마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를 보자마자 갑자기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를 따라가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기합이나 다름 없던 고된 훈련과 매질에 더해 늘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것도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김씨는 "한 어린 학생이 식당에서 고기 몇 점을 집어 주머니에 몰래 넣고선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화장실 가서 먹는 걸 봤다"며 "지금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삼청교육이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렸다.

지갑 속에 고이 넣어둔 삼청교육대 수료증을 꺼내 보이며 "이게 남아있어서 수월하게 규명된 것 같다. 수료증을 이렇게 잘 보관한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며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으로 80년대 전두환 군부 정권이 자행한 학생 삼청교육대의 실체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씨는 "청소년만 모아놓은 삼청교육대가 있었다는 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라며 "국가의 공식 사과도 받고 싶지만 그보다 이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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