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너와 나' 김시은, '늑대소년' 보고 배우 꿈꿨다...타고난 배우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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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2023)의 김시은에게 사로잡힌 시선은 <너와 나>(2023)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어떻게 보이려는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 순전한 상태의 인물을 마주할 때 관객은 희열을 느끼고 몰입하게 된다.

카메라 앞이 유독 편안해 보이는 김시은은 역할에 풍덩 빠진 채 스스럼없이 울고 웃고 걸어다니고 춤을 춘다. 힘을 뺀 무표정에도 복합적인 기류를 담아내는 그는 타고난 배우의 얼굴을 가졌다.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 김시은 화보

하퍼스 바자 4년 전 인터뷰를 찾아보니 자신의 연관 검색어로 대표작이 뜨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사이 벌써 대표작이 생겼어요. 영화 〈다음 소희〉로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고요.

김시은 상을 받을 때 무엇보다 안심이 됐어요. 그래도 내가 영화에 피해를 끼친 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퍼스 바자 영화를 찍으면서 부담이 컸나요?

김시은 단편영화는 찍어봤지만, 장편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 사실만으로도 부담이 컸고 현장에서 그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너와 나〉의 경우에는 박혜수 선배님과 함께 끌고 가는 장면이 많고, 사전 미팅과 리허설을 자주 하면서 현장에 가기 전 하은으로서의 몸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에 비해 〈다음 소희〉에는 소희가 혼자 고립된 상태로 해내야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이 영화가 어떻게 보면 1부와 2부로 나눠진 것처럼 다가갈 수 있잖아요. 엄청 걱정했거든요. 관객분들이 배두나(선배)는 언제 나오나, 하면서 기다리시면 어쩌지.

하퍼스 바자 긴장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김시은 그걸 들키면 연기하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집중도 안 되고, 힘들다고 느끼는 상태가 일의 능률을 떨어뜨릴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인 거죠. 이제와 돌아보니 그때 참 부담이 컸고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고요.

하퍼스 바자 그렇게 과거에 눌러둔 감정을 발견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어요?

김시은 앞으로도 나를 조금씩 속이면서 살아야겠다.(웃음) 그게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인 것 같고, 아직은 그걸 배워가는 단계인 듯해요. 지금은 감정 기복이 그나마 덜한데 예전엔 심했기 때문에 저를 완전히 속이려 했어요.

하퍼스 바자 들뜨는 게 싫어요?

김시은 네, 조금 불편해요. 그러고 나서 집에 가서 후회하는 감정이 더 싫더라고요.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 김시은 화보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의 삶은 어떤 것 같아요?

김시은 사실 아직은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요. 배우는 대개 끊임없이 일하는 게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공백이 있잖아요. 시간을 어느 정도 낭비하는 부분이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어보니 나중에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데 아직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그러면 그 시간에 뭘 하고 있나요?

김시은 요즘은 기타 치고 노래하고 책 보고, 집에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요. 이런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궁리하고만 있어요.

하퍼스 바자 지금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김시은 그런가요? 저를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인 것 같긴 한데 언제까지 절 알아봐야 할지….(웃음)

하퍼스 바자 그건 죽을 때까지가 아닐까요?(웃음)

김시은 저는 저에 대해서 그만 공부하고 싶거든요.

하퍼스 바자 그러면 스스로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외부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나를 발견하고 싶은 걸까요?

김시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새로운 상황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도전적이진 않은데 그런 상황을 기다리기도 하고. 저는 모순된 사람인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촬영 순서는 〈너와 나〉가 먼저였지만, 공개된 것은 〈다음 소희〉가 먼저였죠. 첫 장편영화로 칸영화제에도 다녀왔잖아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김시은 제겐 너무나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주리 감독님이 영화를 미리 보여주지 않으셨어요. 칸에 가서 영화를 처음 보게 돼서 떨렸죠. 또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진지하게 화내는 장면에서 한 관객분은 웃으시더라고요. 거기서 어떤 희열이 느껴졌어요.

하퍼스 바자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면 다른 감상이 들잖아요. 자신의 연기는 어땠어요?

김시은 그렇게 큰 스크린에서 제가 연기한 걸 처음 봤거든요. 스크린에서는 정말 하나하나 자세하게 다 보이는구나. 앞으로 연기를 더 진실되게 생각하고, 인물을 진심으로 대해야겠다,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하퍼스 바자 무의식적인 동작 하나까지, 무엇도 감출 수 없죠.

김시은 맞아요. 제가 약간 집중을 놓친 순간들이 티가 나서 아쉬웠어요.

하퍼스 바자 분명 본인만 눈치챈 부분도 있을 거예요. 〈다음 소희〉 〈너와 나〉를 보면서 이 배우는 역할에 풍덩 빠져서 참 순수하게 연기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느낀 그대로의 감정이 터져나오는 연기였어요.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요?

김시은 인물이 처한 상황과 환경, 특히 장면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과거나 현재의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해요. 인물의 성격이 왜 이렇게 형성됐는지를 주로 연구하는 것 같아요. 〈너와 나〉의 경우에는 혜수 선배님과 계속 대화하면서 하은과 세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둘의 호흡이 중요한 영화라 현장에서 상대의 호흡에 조금 더 따라갔던 것 같아요. 〈다음 소희〉 때는 영화 속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상태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감사하게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 촬영도 거의 영화 속 장면 순서에 맞춰서 하셨던 것 같아요. 덕분에 감정선을 연결하기 훨씬 수월했죠.

하퍼스 바자 아무리 캐릭터 뒤에 숨는다고 해도 연기하는 ‘나’가 드러나게 마련이잖요. 내 모습이 드러나는 걸 지양하는 배우들도 있고요.

김시은 음…. 저는 진짜의 나는 뭐고 가짜의 나는 뭘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다른 인물이 되는 것도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일상적인 내 모습을 어디까지 보여야 하는지가 어려워요. 개인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정도까지 나를 드러내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좋아할까.

하퍼스 바자 오히려 연기할 때보다 개인으로서의 나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가 더 어려운 거네요.

김시은 네. 연기할 때는 인물을 표현하면 되니까 그에 대한 두려움이나 갈등은 크게 없어요. 그런데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게다가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거의 매일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혹여 실수를 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도 있어요.

하퍼스 바자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은데 어떤 작가를 좋아해요?

김시은 소설을 편식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작가님도 아직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 김시은 화보

하퍼스 바자 취향을 찾아가는 중이군요.

김시은 맞아요.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좋고요. 책이 너무 짧으면 끝나는 게 아쉬워서요.

하퍼스 바자 지금까지 들었던 연기에 관한 피드백 중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김시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퍼스 바자 말해보세요.(웃음)

김시은 어떤 감독님이 저한테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대충대충 하라고 하셨거든요.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하신 말씀이었을 거예요. 앞으로 연기할 때마다 그 말이 계속 생각날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혹시 조현철 감독의 말인가요?

김시은 네, 맞아요.(웃음)

하퍼스 바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진짜 대충 하라는 게 아니라 잘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경직되니까 그 긴장을 덜어내기 위해서 한 말이죠.

김시은 맞아요. 〈너와 나〉 촬영 초반에 제가 특정 발음을 유독 똑바로 하려고 했나 봐요. 그런데 감독님이 거기서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셨어요. 제 성향을 관찰하시면서 이미 저라는 배우를 파악하셨겠죠. 그래서 그렇게 조언하신 것 같아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하퍼스 바자 조현철 감독은 김시은은 천재라고 말하던데요. 연기 천재.

김시은 저한테는 자신과 같은 과의 배우라고 하셨는데.(웃음) 그래서 감독님과 꼭 한번 같이 연기해보고 싶어요. 제가 만날 말해요. 감독님이랑 연기하고 싶다고.

하퍼스 바자 그러면 조현철 감독이 뭐라고 하던가요?

김시은 딱히 그렇게 좋아하시지는 않던데요?(웃음)

하퍼스 바자 십대 때 방송 활동을 시작했잖아요. 계기가 뭐예요?

김시은 배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배우를 해야 될지 모르겠고, 십대 때 뭐라도 도전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인생은 한 번뿐인데, 죽으면 끝인데 그냥 해보자!

하퍼스 바자 연기는 왜 하고 싶었어요?

김시은 TV를 너무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나도 저기 나오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겨났어요. 어느 날은 극장에 갔는데 그날 영화를 보다 처음으로 울었거든요. 그때 본 영화가 〈늑대소년〉(2012)이에요. 영화를 보다 울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충격이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관객분들도 다 같이 울고 계시는 거예요. 나도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때부터 들끓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여기까지 오는 데 결정적이었던 초기 커리어는 뭐라고 생각해요?

김시은 〈생방송 판다다〉(EBS)요. 저한테는 진짜 중요한 프로그램이에요. 평일에 매일 방영되는 생방송이다 보니 대본 습득력이 있어야 해요. 콩트 연기도 해야 했고요. 덕분에 지금도 대본 습득이 빠른 편이라고 할까요? 그리 어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연기를 하고 나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가요?

김시은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제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퍼스 바자 좀전에 대본 습득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외에 어떤 자질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김시은 상황 속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현장에는 카메라도 있고 조명도 있고 정말 많은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그런 외부 요소들이 보이지 않고 오직 상대방만 보여요. 빠져나와서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하퍼스 바자 그 정도로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배우라는 일을 사랑하나요?

김시은 사랑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잘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어떤 일을 하든 이런 느낌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잘 맞는 느낌이 이기니까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열정도 크고요. 혹시 이런 게 사랑인가요?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시은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시은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시은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시은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시은

사진=김시은 인스타그램

사진=김시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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